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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아래의 글은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남을 칭찬하는 사람, 남을 헐뜯는 사람' 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대가를 구하지 않고 베푸는 사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착하고 올바르고 관대하고 의욕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헌신하고,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하면 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결국 보상을 받게 될까?


정직한 대답은 딱 하나, '아니다' 이다. 공적을 세운 대가로 상을 받고, 훌륭한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관대한 사람들은 이기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도둑들에게 강탈당하고, 온순한 사람은 참을성없는 사람들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남에게 준 사람은 그에 상응할만한 보답을 받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천연두를 몰아낸 제너는 고통스럼게 죽었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인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가들에 의해 목이 잘렸다. 산후병에서 여인들을 구해 준 젬멜바이스는 미치고 말았다.

 

과거의 일들이라고? 천만의 말씀! 정치계에서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감탄의 대상이며 텔레비전에서는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토론에서는 위압적인 사람이 감탄을 받는다. 누군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 오면 평범한 사람들은 시기심 때문에 그를 마구 욕한다. 마음속으로 그를 놀랍게 여기면 여길수록 더욱더 그를 비방한다.

 

일에 전력을 다하여 당신의 귀중한 지성과 인내심을 모두 쏟아넣어 본 경험이 당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아주 굉장한 일을 완성했을 때, 당신은 인정을 받는 대신 경멸의 눈초리와 비웃는 말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런 비난 뒤로 당신이 너무나 훌륭히 해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미움을 샀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런 무서운 질문은 성경과 탈무드에도 울려퍼진다. 유태인들은 서로 물었다. 이렇게 온순하고 국법과 율법을 잘 지키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난폭한 자들에게 억압당하고 박해를 당하는 것일까? 왜 옳은 사람은 고통을 받고 잔악한 인간들은 평온하게 사는 것일까? 그들은 대답을 종교적 믿음 속에서 찾았다. 하느님은 마침내 선한 사람에게 보상을 내릴 것이며 심판에 따라 악한 자들을 벌 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모든 시대마다 이런 질문이 되풀이 되고 답을 찾으려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지옥도 천국도 믿지 않는, 꿈에서 깬 이 시대에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옳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보여주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손익계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착하게 살아서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유일한 대답은 이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착한 행동을 선물
로 주는 것이다. 우리 아들, 내 친구, 우리 도시, 자연, 찾아오게 될 사람을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다. 근원적이고 자유롭고 아무런 동기도 대가도 없는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들의 인간성과 자유에서 곧바로 생겨 나오는 이 선물에는 그 어떤 도덕성도 들어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이 선물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인간의 진보는 이루어졌다. 이 세상의 모든 도덕성은 이기주의적인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더 많이 활동하고, 갖기보다는 더 많이 주도록 인간들을 이끌어간 원초적인 에너지에서 나온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본능으로 자연은 그 자신과 자신의 법칙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개인 및 집단의 이기주의에 대항한다. 그것은 저 너머로 나가는 것, 초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너, 젬멜바이스, 그리고 일을 하고 창조를 하며 자신의 목숨을 잃은 수백만의 사람 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유태 전설에 따르면 세상은, 서른여섯 명의 올바르고 겸손하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과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한다. 실제로 올바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 서른여섯 명 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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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재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한국말을 잘 못해서 번역가를 사용했어요. 그래서 모든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요.

 

평생에서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때때로 고생하는데 앞으로 괜찮을 거예요. 아마 세상이 나쁜 곳 아니에요.

 

한국어 글을 공유하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라는 사람이 한국에서 유명해요?

Francesco Alberoni is an Italian scholar of sociology. Many books of him have been translated into Korean and published in Korea. The original title of book above is "L'ottimismo" in Italian (for "Optimism" in English)

 

http://en.wikipedia.org/wiki/Francesco_Alberoni

한국속담에 "떡 주고 뺨 맞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의 본래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좋은 의도로 준 떡을 먹은 사람이, 그 떡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떡을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려서 죽을 뻔했다고, 그 사람의 뺨을 때린다는 말입니다.

 

그런 상황은, 떡을 준 사람이 잘못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떡을 준 사람은 잘못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준 떡을 급하게 먹은, 즉, 잘, 조심해서 먹지 못한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국사람들은 음식을 받으면, 항상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잘 먹겠다'는 말은 '맛있게 먹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 먹겠다'는 말은 '당신이 베푸신 은혜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이 음식을 잘, 조심해서 먹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우와! 글을 읽기 전에 저는 이 속담에 대해 몰랐어요. 재미있네요! 한국 문화를 가르쳐서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궁금하면, 언제든지 질문하세요.

思密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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